Key mess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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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플로리다대의 부동산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첫 수업시간, 교수가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부동산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가 뭐지?" 내가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외국 학생 3명을 제외한 미국 학생 전원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입지, 입지, 입지 Location, Location, Location!"
입지가 중요하다는 것은 부동산에서 상식으로 통한다. 그런데 왜 입지가 부동산의 1요소라는 걸까? 그것은 다른 요소들에 비해 변하지 않는, 보다 정확히는 가장 천천히 변하고 오래 지속되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건물은 낡고 평면은 유행을 탄다. 브랜드는 꾸준히 새롭게 출시되지만 건물이 위치한 입지는 변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매우 천천히' 변한다. 그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아 체감하기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문득 놀랄 정도로 변해 있다는 걸 깨달을 뿐이다.
2.
유행하는 평면도 변화한다. 과거 1980년대에는 부엌에 식모방이 필수였다가 지금은 없어지고, 같은 30평대도 과거 2베이에서 3베이, 4베이로 진화하는 등 지금의 유행 평면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독신가구, 딩크족, 확산으로 현재 인기 있는 20평대 평면인 '방 3개 화장실 2개' 구조보다 '방 2개, 화장실 1.5개(욕조가 있는 안방 화장실+양변기•세면대만 있고 샤워시설 없는 공용 화장실)' 평면의 인기가 올라갈 것이다. 이미 방 2개 구조인 한남더힐 26평이 매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것을 본 건설사들은 트리마제 등 신규 고급 분양단지에서 유사한 평면을 도입하고 있다.
3.
좋은 입지에 있는 부동산은 파는 것이 아니다. 정 현금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대손손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좋은 입지에 있는 부동산이다. 자산이 먹고 사는 범위를 넘어서면 현금이든 주식이든 채권이든 자산을 보관하는 형태가 중요해진다. 현금은 좋은 교환 수단이지만 가치 저장수단으로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금본위제가 폐지되고 종이화폐, 더 나아가 전자화폐의 시대로 변하고 있는 지금 이론적으론 그 공급이 무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좋은 입지에 있는 부동산은 이 공급과잉으로부터 자유롭다. 토지는 유한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여정부의 이정우 초대 정책실장이 신봉한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토지 사유화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다. 토지, 특히 핵심 지역의 토지는 공급이 제한된 자원이기에 이를 사유화할 경우 공익을 저해한다고 본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처럼 공급이 제한된 좋은 입지의 토지를 내가 사유화할 수만 있다면 그 사적 이익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4.
지역별로 입주 물량이 몰렸다고 해서 매매가가 반드시 하락하는 것은 아니다. 입주가 마무리되고 정상화되면 오히려 주변 일대가 새 아파트촌으로 자리잡게 되어 동반 상승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부동산 투자는 중장기로 보는 사람이 많은 만큼 집주인들은 이 정도는 견디고 버티려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임대 시장은 장기적인 집값과는 상관없이 당장의 공급에 영향을 받는다. 입주물량이 몰리면 입주예정단지도 물량 압박을 받지만 인근 단지에 더 큰 영향을 준다. 가급적이면 새 아파트, 언론에 많이 노출되는 신규 단지로 수요가 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주 물량이 모이는 지역이라면 그 인근 기존 주택의 급매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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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촌이 입지고, 입지가 부촌이다.
부동산을 실수요가 아닌 투자로 접근하면 꼭 한정된 동네만을 한정하여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 동네 안에서 비교우위를 가져다 주는 역세권, 편의시설, 학교보다도 그 동네 자체가 여타 동네에 비교우위를 갖는 속성에 주목해야 한다.
1990년대 아이콘이 된 청담동은 '교통'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리 부촌으로 인식되지 않던 1980년대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즉 역세권은 청담동이 부촌으로 자리잡는 배경과 전혀 상관이 없었고, 오히려 지하철만 놓고 보면 교통의 요지라기보다는 오지에 가까웠다. 학교 역시 인근 압구정동이나 삼성동에 비해 전혀 비교우위가 없다. '생활편의시설'이라고 할 만한 마트, 종합병원, 문화시설들은 오히려 부족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이런 불리한 점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부촌이던 압구정동과 인접하면서 빌라를 짓기 용이한 단층주택이나 나대지가 남아 있던 청담동에 부자들이 몰려 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청담동은 부촌이 되었고, 청담동이라는 브랜드효과에 힘입어 '대단지도 아니고, 단지 내 초등학교도 없으며, 중고등학교는 멀리 떨어져 있는' 청담자이 35평이 20억 원을 호가하게 된 것이다.
한강 조망권 역시 같은 동네 안에서 비교우위를 가져다 주는 요소일 뿐이다. 이것이 '부촌'처럼 절대적인 기준이라면 한강 조망이 잘되는 마포나 당산동 아파트가 한강 조망권이 없는 삼성동이나 개포동보다 비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처럼 한 동네가 여타 동네에 대해 비교우위를 갖는 단 하나의 속성을 꼽으라면 역세권도, 편의시설도, 학교도 아닌 '일반 사람들이 그 동네를 부촌으로 인식하는지' 여부다. 이 단 하나의 속성이 입지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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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후 2000년대까지 근 30년 이상의 부촌 이동 경로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면 하나의 패턴이 뚜렷하게 보인다. 즉 '남하본능'이다. 한강을 건너 압구정동으로 1차 남하한 사람들은 이후 대치동과 개포동, 아시아선수촌과 올림픽선수촌, 분당, 수지 등 줄기차게 남쪽으로 이동해왔다. 그 와중에 목동과 고덕동, 중계동, 평촌과 남양주 등 서울 외곽과 수도권 일대에도 지속적으로 신규 택지가 개발되었으나 '강남사람'들 중 이주를 결심한 사람은 주로 남쪽을 향했다. 비록 목동이 서부권의 신흥 부촌으로 강남 다음 가는 집값을 형성했지만 '강남사람'들 중에 굳이 목동으로 이주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유는 바로 학습효과 때문이다. 1970년대 정부의 강남개발에 따라 한강을 건너 압구정동과 청담동, 서초동 일대로 이주한 사람들은 높은 집값 상승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게 되었다. 이는 '정부의 개발계획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면 돈을 번다'는 공식을 머리 속에 심어주었고, 실제 '천당 밑의 분당'을 구가하던 2000년대 초반까지 이 공식을 따라 이동한 사람들은 나름 재테크의 귀재 소리를 듣게 되었다. "부동산은 경부축을 따라 가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시기였다.
사실 실제 부유층의 이동은 개포지구와 올림픽선수촌, 아시아선수촌까지였고 길게 봐서 분당 구미동의 고급주택단지와 정자동 주상복합까지였다. 정자동은 한때 '청자동'으로 불리며 제2의 청담동 대접을 받았었다. 실제 강남에서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 일부가 분당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상당수 강남으로 귀환한 반면, 수지로 이주한 계층은 강남의 부유층이라기보다는 '자식 집 사주기에 돈이 조금 부족한 사람들'의 실용적인 선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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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경제는 단순한 '상승과 하강'이 아니라 '과열과 붕괴'라는 극단적인 롤러코스터를 탄다는 것이 하나의 상식처럼 여겨져왔다. 이는 인간의 탐욕과 희미해지는 기억력 때문이다.
늘 버블의 정점에선 '앞으로는 계속 좋을 것'이라는 희망이, 폭락의 저점에선 '앞으로는 절대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이 있어왔다.
"미국 주가는 영원히 하락하지 않을 고원에 도달했다." 1929년 미국 대공황이 오기 직전 저명한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한 말이다. 피셔 효과로 잘 알려진 이 저명한 경제학자는 이 말 한마디 때문에 피셔 효과를 발견한 공로보다 버블에 취해 망언을 한 경제학자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도 버블에 취하면 이렇게 되는데 우리 같은 범인들이 오죽하겠는가.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이 거품이 몇 번 생기고 꺼지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우리 인생도 금방 저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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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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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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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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