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mess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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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원한 행복이라느니, 모든 시련의 끝이라느니 하는 약장수가 하는 말이 아니다. 실용적 깨달음이란, 삶이 늘 어느 정도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즉 우리가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든 인생은 실패, 상실, 후회를 수반하고 마지막엔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삶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엄청난 고난들을 순탄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천하무적이 될 수 있다. 단언컨대 고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2.
좋은 삶을 살려면, 더 많이 신경 쓸 게 아니라, 더 적게 신경 써야 한다. 요컨대, 오로지 코앞에 있는 진짜 중요한 문제에만 신경을 쓰라는 말이다.
3.
삶에는 또 다른 진리가 숨어 있다. 바로 사람들의 웃음거리나 골칫거리가 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큼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 말이다. 그럴 수가 없다. 왜냐면 우리에게 고난이 부족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럴 일은 없다. 옛말에 “네가 어디로 가든, 그곳에 네가 있다”라고 했다. 고난과 실패도 그렇다. 당신이 어디로 가든, 그곳에 200kg짜리 ‘똥 덩어리’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괜찮다. 중요한 건 똥 덩어리에서 도망치는 게 아니다. 당신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똥 덩어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
4.
성공을 결정하는 질문은 ‘나는 무엇을 즐기고 싶은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다. 행복으로 가는 길에는 똥 덩어리와 치욕이 널려 있다.
당신은 뭔가를 선택해야 한다. 고통 없이 살 수는 없다. 꽃길만 걸을 수도 없다. 쾌락에 관한 질문에 답하기는 쉬우며, 아마 모두가 비슷한 답을 내놓을 것이다. 더 흥미로운 질문은 바로 고통에 관한 것이다. 당신은 어떤 고통을 견디고 싶은가? 이는 무척 어렵고도 중요한 질문이며, 당신을 실제로 나아가게 해 주고 사고방식과 삶을 바꿔줄 수 있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나를 나로, 당신을 당신으로 만든다. 이것이 우리를 규정하고 구분 지으며, 궁극적으로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
5.
육체 건강에는 역시 채소다. 그렇다면 감정 건강을 위한 채소는 무엇일까? 바로 무미건조하고 일상적인 삶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 넓은 세상을 고려하면, 내 행동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아” 혹은 “내 인생 대부분이 지루하고 평범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아”와 같은 자세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채식이 도무지 입에 맞지 않아 고개를 돌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일단 삼키면, 몸에 힘과 활력이 넘칠 것이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차세대 거물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 매일같이 능력을 증명하려는 욕구 그리고 무력감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가실 것이다. 자신이 평범한 존재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어떤 평가나 거창한 기대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이루게 될 것이다. 또한 삶의 근본이 되는 경험을 깊이 음미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소소한 우정을 나눈다거나, 무언가를 창작한다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다거나, 좋은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웃는 일 등에서 즐거움을 찾게 될 것이다.
따분한 소리 같은가? 그건 이런 일들이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이 괜히 일상인가. 중요하니까 일상이다.
6.
자아 존중감을 제대로 측정하려면 긍정적 경험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아니라, 부정적 경험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봐야 한다. 지미 같은 사람은 뭔가를 시도할 때마다 자신이 성공했다고 상상함으로써 문제를 외면한다. 자신에게 얼마나 만족하든, 이런 사람들은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할 힘이 없는 나약한 자들이다.
실제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부정적인 부분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래, 난 돈 문제에 무책임할 때가 있어.” “그래, 난 내 성공을 과장할 때가 있어.” “그래, 난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해. 자립심을 키워야겠어.”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한다. 그러나 허세꾼들은 자신의 문제를 솔직히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삶을 알차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바로잡지 못한다. 끝없이 쾌락을 좇고 부정을 차곡차곡 쌓아 올릴 뿐이다.
그러나 결국엔 현실이 들이닥쳐, 근본적인 질문이 다시 한 번 그들을 일깨우고 말 것이다. 단지 그날이 언제냐, 그리고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이냐가 문제일 뿐이다.
7.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자아’란 각자가 제멋대로 만들어낸 관념일 뿐이며, 우리는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자의적인 기준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행위는 사실상 자승자박이나 마찬가지이니 차라리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 신경 끄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충고하건대, 자신이 특별하다거나 남다르다는 생각을 버려라. 삶의 기준을 평범하고 일반적인 것으로 다시 정하라. 자신을 유망주나 재야의 천재로 보지 말라. 비참한 피해자나 형편없는 실패자로도 여기지 말라. 그보다 훨씬 평범한 정체성인 학생, 배우자, 친구, 창작자와 같은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라.
자기의 정체성을 좁고 희귀한 것으로 규정할수록, 더 많은 삶의 요소들이 위협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되도록 단순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규정하라.
이렇게 살아가려면 거창한 자아상을 버려야 한다. 이를테면, 나는 유별나게 똑똑하다거나, 재능이 넘친다거나, 엄청나게 매력 있다거나, 상상을 초월할 만큼 괴롭게 산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내 덕에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거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는 엉뚱한 믿음도 버려야 한다. 오랫동안 의존해 온 감정적 쾌락도 끊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포기하면, 약쟁이가 주삿바늘을 버릴 때처럼 금단 증상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새사람이 될 것이다.
8.
자기를 인식하는 일은 양파와 닮아 있다.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층들을 벗길수록 쌩뚱맞게 눈물 나는 일이 많아진다는 점에서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내가 제대로 몰랐던 감정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인식의 첫 단계는 자기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난 이럴 때 행복해’, ‘난 이럴 때 슬퍼’, ‘난 이럴 때 희망을 느껴’와 같은 종류의 인식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자기인식에도 젬병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도 그렇기 때문에 잘 안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감정적 맹점’을 갖고 있다. 이는 보통 한 개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것으로 여기게 된 감정과 관련이 있다. 우리 안의 맹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몇 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만큼 노력할 가치가 있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자기인식 양파의 두 번째 층은 우리가 어떤 감정을 ‘왜’ 느끼는지를 묻는 능력이다. 감정의 이유를 찾는 이 질문은 몹시 어려우며, 어쩌면 일관되고 정확한 답을 찾는 데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질문을 처음 듣는 순간은 심리 치료사를 만났을 때다. 그 전까지 우리는 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정확히 따져보지 않는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이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과 실패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왜 화가 날까?’ ‘목표를 이루지 못해서일까?’ ‘난 왜 무기력한 기분이 들지?’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이 질문들은 어떤 감정이 우리를 위축시키는 지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론적으로는 원인을 이해하면 즉시 그걸 변화시키는 작업에 돌입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인식 양파에는 더 깊은 층이 있다. 눈물로 가득한 이 세 번째 층은 바로 개인의 가치관이다. ‘나는 왜 이것을 성공 또는 실패로 간주할까?’ ‘난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거지?’ ‘난 자신과 주변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 걸까?’
세 번째 층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노력해야 간신히 닿을 수 있다. 하지만 가치관이 우리 문제의 본질을 규정하고, 문제의 본질이 삶의 질을 규정하므로, 이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가치관은 인간의 존재와 행동의 밑바탕을 이룬다. 우리가 쓸모없는 것에 가치를 둔다면, 가령 엉뚱한 것을 성공 또는 실패로 생각한다면, 그 가치관에 기초한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생각, 감정, 일상적인 느낌 모든 것이 말이다. 어떤 상황에 관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그것에 얼마나 가치를 두느냐에 좌우된다.
9.
인간의 두뇌는 효율적인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날이면 날마다 형편없는 가정을 받아들이고, 확률을 잘못 계산하며, 사실을 틀리게 기억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며, 일시적 기분에 휩쓸려 결정을 내린다. 인간은 틀리는 게 일상이다. 따라서 당신이 성공적인 삶을 위한 기준이 늘 옳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헛소리를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나는 다 안다는 식으로 자존감을 세우는 사람은 시행착오를 통해 뭔가를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들은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고 타인에 공감하지 못한다. 더불어 새롭고 중요한 정보를 스스로 차단한다.
차라리 ‘난 무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는 태도를 취하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된다. 그러면 미신적이거나 허술한 믿음에 얽매이는 대신, 지속적으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10.
장기적으로 보면, 초콜릿 케이크를 먹을 때보다 마라톤을 완주할 때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비디오게임에서 이길 때보다 아이를 키울 때가 더 행복하다. 새 컴퓨터를 살 때보다 친구와 작은 사업을 시작해 간신히 입에 풀칠만 하고 살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활동은 스트레스를 주고, 고되며, 때로는 불쾌하기도 하다. 또 가혹한 문제를 연이어 낳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자 가장 기쁜 일이다. 고통과 투쟁은 물론 분노와 절망까지 따르겠지만, 일단 해내고 나면 훗날 촉촉한 눈매로 과거를 회상하며 손주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말했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투쟁했던 나날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므로 쾌락, 물질적 성공, 나는 다 안다는 태도, 무한 긍정과 같은 가치는 삶의 이상으로 삼기에 적절치 않다. 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쾌락, 성공, 지식, 긍정과는 거리가 멀다.
중요한 건 좋은 가치와 기준을 못 박아 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즐거움과 성공은 그 결과로 자연히 따라온다. 즐거움과 성공은 좋은 가치관의 부산물로, 그 자체로는 공허한 쾌락에 지나지 않는다.
11.
이런 상상을 해보자. 누군가 나타나 42.195킬로미터를 뛰지 않으면 가족을 죽이겠다고 당신을 협박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번엔 이런 상상을 해보자. 멋진 운동화와 스포츠용품을 구입해 몇 달 동안 엄격히 훈련한 뒤 처음으로 마라톤을 완주한다. 결승점에서는 당신을 기다리는 가족과 친구가 환호를 보낸다.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 아닐까.
똑같은 사람이 똑같이 42.195킬로미터를 뛰고 똑같이 고통이 온몸으로 퍼진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선택해 준비했을 때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되고, 억지로 했을 때는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경험이 된다.
쓰라린 기분을 느낄 것인가, 솟구치는 기운을 느낄 것인가. 둘 사이를 가르는 건, ‘이건 내 선택이니 내 책임이다’라는 마음가짐이다. 지금 비참함을 느끼고 있다면, 아마도 그건 현재 상황의 일부를 내가 통제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내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내 선택과는 무관하게 억지로 떠맡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문제는 내가 선택한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에너지를 느낀다. 반면 내 의사와 상관없이 문제가 강요되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부당함과 비참함을 느낀다.
12.
명심하라, 외부 환경이 어떠하건 간에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내 책임이다.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전부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언제나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
이걸 알건 모르건 간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경험에 책임이 있다. 없을 수가 없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사건을 의식적으로 해석하지 않기로 하는 것도 사건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다. 사건에 대응하지 않기로 하는 것도 일종의 대응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닌 상대방의 잘못으로 접촉사고가 난다고 해도, 거기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정하는 건 당신 책임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우리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에 언제나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언제나 매 순간, 매 사건의 의미를 해석한다. 언제나 가치를 선택해 그에 따라 살아가며, 기준을 정해 그것으로 사건을 평가한다. 때로는 어떤 기준을 택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이 좋은 것이 될 수도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요점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13.
우리는 가만히 앉아 문제를 바라보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는 말한다. “어떡하지?” 어쩌긴, 그냥 하면 되지. 난 이런 질문을 하는 이메일을 매일같이 받는다. 한동안은 여기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어떤 여성의 고민은 이랬다. 부모님이 자기를 의대에 보내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의대에 다니는 게 너무 싫고, 평생을 의사로 일하기는 더더욱 싫다고 했다. 그녀의 소원은 의대를 그만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 유치하고 뻔한 질문을 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의대를 그만둘 수 있을까요?”라고. 또 다른 대학생은 조교를 짝사랑한다고 했다. 그녀의 몸짓, 웃음소리, 미소, 잡담 하나하나에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그의 로맨스 소설급 이메일은 이런 질문으로 끝을 맺었다. “데이트 신청을 어떻게 해야 하죠?”
밖에서 보면 답은 간단하다. “닥치고 그냥 해!” 그러나 안에서 보면, 즉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다. 재밌는 점은 오직 당사자만 질문을 어렵게 느끼고, 그 외의 사람들은 전부 쉽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이 선택한 고통을 견디는 법이다. 새로운 가치관을 선택한다는 건 새로운 고통을 자신의 삶에 들여오는 것이다. 그 고통을 즐기고 음미하라. 두 팔을 활짝 벌려 환영하라. 그리고 고통스러워도 당신이 선택한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라.
거짓말하지 않겠다. 처음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거다. 하지만 일단 해보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거다. 하지만 앞에서 이미 얘기하지 않았나.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뭔가 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자기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잃을 게 뭐가 있겠는가?
삶은 무지와 행위로 이루어진다. 모든 삶이 다 그렇다. 이건 변치 않는 진리다. 당신이 행복하건, 방귀를 뀌어 금가루를 분출하건, 복권에 당첨돼 요트를 사건 간에, 당신은 변함없이 자기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할 거다. 이걸 명심하라. 그리고 절대 겁내지 말라.
14.
많은 사람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을 때 오히려 위대한 성취를 이뤄낸다. 고통은 때로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해준다. 더 강한 사람으로, 더 현실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이를테면, 암과의 사투에서 승리한 많은 사람이 전보다 더 강해진 느낌이 들고 전보다 더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 많은 군인이 교전 지역의 위험한 환경을 견뎌낸 뒤 정신력이 강해졌다고 말한다.
동브로프스키에 따르면, 공포와 불안과 슬픔이라는 고통은 정신 건강에 해롭기만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 성장에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부정하는 건 곧 자신의 잠재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육체적 고통을 겪어야 뼈와 근육이 강해지는 것처럼,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정신력, 자존감, 공감 능력이 강해져서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사람은 보통 최악의 순간을 경험한 뒤에야 인생을 보는 관점이 확 바뀐다. 일단 극심한 고통을 겪어 봐야, 우리는 기존의 가치를 돌아보며 왜 그것이 도움이 안 되는지를 따져 본다. 우리에겐 일종의 실존적 위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객관적인 눈으로 내가 지금껏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았는지를 되돌아보고, 인생의 방향을 재설정하게 된다.
15.
뭔가를 성취하고 싶은데 동기나 자극이 없을 때, 우리는 그냥 망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 버린다. 먼저 마음속에서 불꽃이 일어야만 실제로 소파에서 일어나 뭔가를 할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의 3단계 반응이 그대로 끝나는 게 아니라 무한히 반복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 자극 → 동기 → 행동 → 자극 → 동기 → 행동 → 무한 반복
행동이 정신적 반응과 자극을 일으키고 뒤이어 다른 행동의 동기가 된다. 이 지식을 활용해 사고방식을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다.
• 행동 → 자극 → 동기
동기가 부족해서 인생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뭔가를 하라. 뭐라도 말이다. 그다음 행동의 반응을 활용해서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라. ‘뭐라도 해’ 원리를 따르면, 실패가 하찮게 느껴진다. 모든 결과가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성공의 기준은 그저 행동하는 것이며, 자극은 전제조건이 아니라 보상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실패하고, 실패는 또다시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16.
세계를 누비겠다는 거창한 포부로 무장한 채, 5년 넘게 여러 나라와 바다를 횡단하며 지구 위에서 땅따먹기를 했다. 55개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친구를 만났고, 많은 여자를 만났다. 하지만 대부분 다른 나라로 가는 비행기에 앉아 있을 때쯤엔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의 짧은 관계들이었다.
내면의 고통을 잠재우기 위한 피상적인 쾌락과, 견문을 넓혀주는 환상적인 경험으로 가득한 낯선 삶이었다. 엄청나게 심오하면서 동시에 엄청나게 무의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기의 여행을 통해서 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얻었고, 내 인격을 결정짓는 순간을 경험했다. 하지만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많이 허비한 시기이기도 했다.
지금 나는 뉴욕에 산다. 집이 있고, 전기 요금을 내며, 아내가 있다. 지금의 삶에서 눈에 띄게 화려하거나 흥미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몇 년 동안의 신나는 모험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완전한 자유 그 자체는, 아무 의미도 없다.
자유는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 기회를 주지만, 그 자체로 반드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궁극적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의미 있고 중요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은 수많은 선택지들을 거부하는 것이다. 즉 자유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우리는 한가지를 선택해 몰입해야 한다. 하나의 장소, 하나의 믿음, 하나의 사람을 말이다.
몇 년 동안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차츰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일반적으로 무절제한 행동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려면, 일단 거기에 한번 푹 빠져봐야 한다. 내겐 여행이 그랬다. 53, 54, 55번째 나라에서 흥청망청 지내는 동안, 이게 신나고 굉장한 경험이긴 하지만 결국엔 덧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고향 친구들은 자리를 잡아 결혼하고, 집을 사고, 회사 일이나 정치적 이상에 몰두했다. 반면, 난 쾌락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17.
여행은 자기계발에 안성맞춤이다. 자기가 속한 문화의 가치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나와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따르는 사회도 나름의 방식으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의 가치관과 기준을 접하고 나면, 그동안 확신했던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러시아 여행을 통해, 늘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미국 백인 문화의 가식적 의사소통이, 사람 사이에 있는 불안과 거리를 오히려 더 증폭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됐다.
18.
하나의 가치를 선택하려면, 나머지 가치들을 거부해야 한다. 결혼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선택했다는 건, 코카인 파티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느냐를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기로 했다면, 그건 뒤에서 친구를 쓰레기 취급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과 같다. 이것들은 전부 건전한 결정이지만 한결같이 거절을 포함한다.
요컨대 뭔가에 가치를 두려면, 우리는 뭔가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뭔가에 가치를 두려면, 그 외의 것을 거부해야 한다. 즉 X에 가치를 두려면, X가 아닌 것을 거부해야 한다. 거부는 가치관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무엇을 거부하느냐가 우리를 규정한다.
거절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다. 불행한 관계에 얽매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짜증 나고 불안정한 직장 생활에 얽매이고 싶은 사람도 없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게 만드는 문화를 달가워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걸 선택한다.
솔직함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가 솔직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한 방법은 서로 ‘아니오’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거절을 하면, 오히려 관계가 좋아지고 감정이 건전해질 것이다.
19.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때는 ‘스스로 원해서’ 해야 한다. 의무감으로 또는 희생하지 않았을 때 생길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희생하면 안 된다. 가령 당신 애인이 당신을 위해 희생한다면, 애인이 스스로 원해서 해야 한다. 당신이 분노나 죄책감을 이용해 애인을 희생하도록 몰아가면 안 된다. 사랑이라는 행위는 조건이나 기대가 없을 때만 타당하다.
의무감으로 하는 행동과 자발적으로 하는 행동의 차이를 식별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여기 리트머스 시험지를 준비했다. 자신에게 물어보라. “내가 거절하면, 우리 관계가 어떻게 될까?” “내 애인이 내가 원하는 걸 거절하면, 우리 관계가 어떻게 될까?”
거절하면 난리가 나서 접시가 날아다닐 거라는 답이 나오면, 관계가 틀려먹었다는 뜻이다. 그건 당신 관계가 조건 없이 상대와 (상대의 문제를) 받아들이는 관계가 아니라, 상대로부터 얻는 피상적인 이익에 기초한 조건적인 관계임을 암시한다.
경계가 분명한 사람들은 짜증이나 논쟁, 상처받기를 겁내지 않는다. 경계가 흐릿한 사람은 이런 걸 두려워하고, 언제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감정 기복에 따라 행동한다. 경계가 뚜렷한 사람들은 두 사람이 서로 100퍼센트 일치하거나 상대의 욕구를 전부 충족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이들은 자기가 때로는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가 상대의 마음을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이들은 건전한 관계란 서로의 감정을 조종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대의 성장과 문제 해결을 돕는 관계라는 것을 안다. 상대가 신경 쓰는 모든 것에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상대가 어디에 신경을 쓰는지와 무관하게 상대에게 신경 쓰는 게 조건 없는 사랑이다. (알겠지, 자기야?)
20.
건전한 관계를 지속하려면, 두 사람 모두가 '아니' 또는 '안 돼'라는 말을 주고받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부정이 없다면, 즉 가끔씩 거절을 하지 않는다면, 경계가 무너져서 한 사람의 문제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게 된다. 갈등을 겪는 건 정상일 뿐만 아니라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다. 서로의 차이점에 대해 거리낌 없이 논쟁할 수 없다면, 그런 관계는 밑바탕에 감언이설과 사탕 발림이 깔려 있는 것이기 떄문에, 서서히 치명적인 관계로 치닫게 된다.
신뢰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까닭은 단순하다. 신뢰가 없다면 관계는 사실상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난 널 사랑한다고, 너와 함께하고 싶다고, 너를 위해서라면 난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신뢰가 없다면, 그런 말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은 나를 향한 사랑에 아무런 조건도 마음의 응어리도 없다고 믿을 때 사랑을 느낀다.
21.
지난 몇 년 동안, 내 개인사에서 가장 큰 사건을 꼽으라면 몰입을 선택한 것을 들 수 있다. 난 내 인생 최고의 사람들과 경험, 가치를 제외한 나머지 것은 전부 거부하기로 했다. 사업 계획을 전부 접고 글쓰기에만 집중했다. 그 뒤로 내 홈페이지는 그전까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인기를 얻었다. 오랫동안 한 여성에게 헌신하자, 놀랍게도 어떤 단기적 만남에서도 얻을 수 없었던 값진 보상을 받게 되었다. 한 지역에 정착하자, 소중하고 진실하며 건전한 친구 몇몇에게 전념하게 되었다. 직관에 완전히 반하는 내 발견은 몰입 안에 자유와 해방이 있다는 것이다. 내게 정말로 중요한 것을 선택해 집중하고 정신 사납게 하는 온갖 대안을 거부함으로써 난 더 많은 기회와 더 좋은 것을 얻었다.
몰입할 때 자유를 얻는 까닭은, 더는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 흔들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몰입하면 자유로운 까닭은, 중요한 일에 집중해 정신을 가다듬는 게 건강과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몰입하면 결정을 내리기 쉬워지고 좋은 것을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 있다. 지금 내게 있는 게 충분히 좋다는 걸 안다면, 무엇 때문에 마냥 더 좋은 것을 꽃아다니느라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몰입하면 아주 중요한 몇 가지 목표에 집중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대단한 성공을 이뤄낼 수 있다.
이처럼 대안을 거부할 때 우리는 자유를 얻는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와 자신이 선택한 기준에 어긋나는 것을 거부할 때, 깊이 없이 폭넓은 경험만을 추구하기를 거부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그래, 어린 시절에는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게 바람직하다. 아마 필수라 해도 좋을 거다. 결국엔 세상을 폭넓게 경험하면서 내 모든 걸 바칠 만큼 가치 있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하지만 황금이 묻혀 있는 곳은 깊다. 뭔가에 끊임없이 몰입해 깊이 파고들어 그걸 캐내야 한다. 관계, 직업, 훌륭한 생활 방식을 만들기를 비롯한 모든 일에서 마찬가지다.
22.
what
자기계발
where
밀리의 서재
when
24.6.4 ~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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