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messages
✔︎ ㅇ
1.
사바나에서 마리아를 생존하게 해준 칼로리에 대한 갈망은 오늘날의 세계에는 적합하지 않다. 인류가 지구에 출현한 이래 99.9%에 달하는 시기 동안 생존을 도왔던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갑작스레 도움은커녕 도리어 해가 된 것이다.
이 예시는 추론이 아니라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우리는 수백만 년 동안 진화를 통해 칼로리에 대한 갈망이 내재화된 몸으로 살고 있는데, 현대 세계에서 칼로리는 사실상 돈만 있다면 거의 무한대로 제공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불과 두어 세대에 걸쳐서 일어나는 바람에 인류에게 변화할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순전히 생물학적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여전히 먹을 것을 보면 “먹어버려. 내일 아침에는 남아 있는 게 없을걸!”이라고 외치는 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자명하다. 비만과 2형 당뇨는 현재 세계적인 문제다. 우리 선조들의 몸무게가 정확히 얼마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산업화 이전 사회를 살아가며 평균 체질량지수(BMI)가 20 수준(평균 체중의 하한선)인 아프리카 부족들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는 있다. 오늘날 미국의 평균 BMI는 29(비만 기준 경계선)이며 스웨덴은 25(과체중)다.
2.
그런데 우리는 신체적인 부분에서만 지금의 세계와 제대로 발맞추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마리아가 주변의 위협 때문에 항상 불안을 느끼고 이를 피하고자 대책을 세워왔다고 가정해보자. 많은 이가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다른 사람에게 맞아 죽고 혹은 동물에게 잡아먹히는 세계에서는 이런 불안과 대비가 생존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안전한 세계에서 산다면, 끊임없이 사고를 대비하느라 기분만 나빠지고 불안이나 공포증에 사로잡혀 살게 될 것이다.
3.
완벽한 세계에서는 눈앞의 결정에 앞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샌드위치를 먹고자 한다면 샌드위치의 영양 성분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맛을 내는지, 빵은 갓 구운 것인지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또한 몸의 깊은 곳에서부터 음식물을 원하고 있는지, 샌드위치가 이런 욕구를 채우는 데 최선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이제 이런 모든 정보를 취합하여 샌드위치를 먹을지 말지에 대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다. 만약 우리의 선조 중 누군가가 이러한 ‘완벽한 세계’에 떨어져 꿀이 가득한 벌집 앞에 서 있다고 치자. 우리의 선조는 꿀을 손에 넣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과 이득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벌집에 있는 꿀의 양과 칼로리, 몸이 에너지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꿀을 손에 넣으려고 벌집을 들쑤셨을 때 다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벌 이외에 다른 위험은 없는지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선조는 손쉽게 모든 정보를 취합하여 꿀을 손에 넣을 것인지, 그만 관심을 끌 것인지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선조가 살던 세계나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그런 완벽한 세계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때 감정이 개입하여 우리가 다양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즉각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에 정보가 불충분하거나 결정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뇌가 빠르게 계산하여 감정이라는 형태로 답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허기를 느끼게 하여 샌드위치를 먹게 만드는 식이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선조 역시 쏘일 확률이 낮거나 절박하게 음식이 필요한 상태라면 허기를 느끼고 꿀을 손에 넣기로 할 것이다. 하지만 위험이 너무 크다면 두려움을 느끼고 물러설 것이다.
우리의 뇌는 음식이 남아도는 오늘날의 세계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대부분 담아 먹는 젤리 코너 앞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는 굶어 죽을 위험을 감수하는 카린보다는 칼로리를 갈망하는 마리아의 후손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4.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간 뇌에서 가장 고도로 발달한 독특한 부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저 진화에 따라 오래되고 원초적인 부분에 의존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스트레스 상황에는 빠르고 강력하게 대처할지 몰라도, 바로 뇌의 ‘생각하는’ 부분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결국에는 문제를 더 키우게 될 수도 있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리는 싸우거나 달아나게 되고, 결국 정교하게 문제를 바라볼 기회를 놓치고 만다. 뇌는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싶어 하며, 사회적 요령보다는 즉각적인 문제 해결이 1순위인 ‘트러블 슛(trouble shoot) 모드’로 진입하기를 원한다. 주변에서 문제가 보이면 곧바로 강하게 반응을 하게 되고, 이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솟구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체 왜 빌어먹을 양말을 방바닥에 두냐고!”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말이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주변을 둘러보며 즐길 여유를 잃게 되어 많은 이가 쉽게 이성을 잃고는 한다. 우리는 잘 지낸다는 느낌이 들어야 경계를 늦추는데, 위협을 받는 뇌에서는 이 느낌이 우선순위에서 맨 끝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동안에는 기분이 자주 나쁘다.
뇌가 우선순위에서 밀어내는 또 다른 기능은 장기 기억에 저장하는 것이다. 기억은 뇌의 여러 부분이 연결되면서 만들어지는데, 이러한 연결고리는 뇌의 기억 저장소인 해마(hippocampus)에서 담당한다. 연결고리와 기억을 강화하려면 해마가 새로 형성된 기억 회로에 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러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그럴 겨를이 없어지고,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기억력이 감퇴하게 된다.
5.
편도체의 활성화는 거의 모든 곳에서 시작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큰 소리가 나거나 회의에 늦거나, 프레젠테이션을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혹은 인스타그램 피드에 만족할 만큼 ‘하트’를 못 받았을 때 활성화될 수 있다. 편도체는 모든 것에 반응할 수 있다! 주변에 자극이 많을수록 살펴볼 게 더 많아진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게 편도체 활동을 가속시킬 수 있다. 뱀, 거미, 높은 곳, 좁은 공간 등 모든 게 가능하다.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스웨덴에서 매년 뱀이나 거미에 물려서 죽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은 250명에 달하며 흡연으로 죽는 사람도 수만 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편도체는 당연히 담뱃갑이나 안전벨트를 하지 않고 운전할 때에도 반응해야 한다. 그런데도 뱀, 거미, 높은 곳에 반응하다니. 어째서일까? 그렇다. 이런 것들이 수천 세대 동안 우리 선조의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편도체는 자동차나 담배의 위협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 뱀이나 거미 공포증으로 심리적인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자동차 공포증보다 더 많은데, 그 이유가 합리적으로 설명이 된다. 또한 이는 진화를 통해 만들어온 세계와 현재 살고 있는 세계 사이의 뚜렷한 불일치를 보여준다.
6.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스트레스를 느끼는 탓에 심지어 ‘발언공포증(Glossophobia)’이라는 단어까지 생겼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할 때 불편을 느끼는 이유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아마도 무리에서 배제되지 않는 게 정말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평가를 받고 사회적으로 굴욕을 당하고, 그래서 무리에서 배제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뇌가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을 작동시켜 심장이 펄떡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변의 평가에 본능적으로 민감한 것은 뇌가 아직 현대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또 하나의 사례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제대로 못 했다고 해서 바로 직장을 잃고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우리가 발달시켜온 세계에서는 무리에서 배제되는 것은 생사와 직결되었다. 소속감은 안정감뿐만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외톨이는 살아남는 게 불가능했다.
7.
뇌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곳곳에 위험이 산재해 있다고 해석하며, 몸을 사리고 이불을 머리에 뒤집어쓰는 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뇌가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감정이다! 뇌는 우리의 기분을 통해 주변 환경이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고 판단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라고 조종한다. 우울감을 느끼게 하여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만약 뇌가 오늘날의 세계에 완벽하게 적응했더라면 장기적인 스트레스는 지금의 세계에 좀 더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 예로 든 내 환자에게 스트레스를 주던 요인들은 머리 위로 이불을 뒤집어쓴다고 해결될 게 아니다. 그런데 뇌는 이러한 논리를 무시하고 도망치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뇌가 오늘날의 세계에 맞춰 발달하지 못한 탓이다. 대신 회피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왜냐하면 뇌는 스트레스를 세계가 위험하다는 신호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이래 대부분의 시기 동안 유효했던 스트레스의 의미다.
8.
지금 휴대전화가 눈앞에 없다고 해도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왜냐하면 만약 휴대전화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 지금 이 책에 집중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휴대전화로 손을 뻗고, 잠들기 전에는 마지막으로 협탁에 휴대전화를 올려둔다. 우리는 하루에 2,600번 이상 휴대전화를 만지며 깨어 있는 동안에는 평균 10분에 한 번씩 들여다본다. 깨어 있는 시간도 부족해서 3명 중 1명(18~24세 가운데에서는 50%)은 한밤중에도 최소 한 번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본다.
만약 휴대전화를 없애버리면 우리 세상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우리 중 40%는 휴대전화만 쓸 수 있다면 온종일 말 한마디 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진짜다! 시내, 카페, 레스토랑, 버스, 저녁 식사 자리, 심지어는 헬스장에서도, 우리는 그곳이 어디든지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9.
도파민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게 아니라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도파민은 바로 우리의 엔진이다. 배가 고플 때 누군가가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으면, 그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도파민 수치가 올라간다.
음식을 먹어서 도파민 수치가 증가하는 게 아니라 도파민은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들고 “바로 여기에 집중해”라고 말하는 것이다. 도파민이 만족감을 주는 것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면, 어째서 뒤늦게 분비되는 걸까?
아마 ‘신체에서 분비되는 모르핀’인 엔도르핀(endorphin)이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도파민은 눈앞에 있는 맛있는 것을 먹고 싶게 만들지만, 그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엔도르핀이기 때문이다.
10.
뇌는 단지 새로운 정보만을 찾는 게 아니라 환경과 사건에서도 새로움을 원한다. 뇌에는 도파민을 생성하는 세포가 있는데, 이 세포들은 오로지 새로운 것에만 반응한다. 익숙한 동네 길거리처럼 이미 알고 있는 것에는 반응하지 않다가, 이를테면 낯선 얼굴처럼 뭔가 새로운 것을 보면 갑자기 세포들이 활성화된다. 감정이 북받치는 뭔가를 볼 때도 같은 반응이 나온다.
새로운 환경과 정보에 목말라하는 도파민 세포의 존재는 뇌가 새로운 것을 높게 평가한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새롭고 낯선 것을 향한 강력한 욕구를 갖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에 영향을 주었다. 어쩌면 이게 음식과 자원이 부족했던 세계에서 우리 선조들이 새로운 기회를 탐구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뉴스 페이지, 메일 혹은 SNS를 가리지 않고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며, 이때마다 우리 선조들이 새로운 장소나 환경을 보았을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보상 시스템이 활성화된다. 실제로 뇌의 보상 추구(reward-seeking) 행동은 정보 추구(information-seeking) 행동과 가까이 위치해서 이따금 이 둘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11.
하지만 오늘날에는 알 수 없는 결과에 대한 우리의 타고난 애착이 문제로 이어지고는 한다. 이를테면 슬롯머신이나 도박판에 빠질 수 있다. 순수하게 오락 차원에서 할 수도 있지만, 개중에는 분명 스스로 도박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중독되기도 한다. 뇌의 보상 시스템이 불확실한 결과에 어떤 식으로 보상을 하는지 살펴보면, 도박과 도박으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어마어마하게 유혹적일 수 있다. 그래서 “포커 한 판만 더! 이번엔 내가 딸 수도 있어!”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교활하게 이용하는 것은 도박업체와 카지노만이 아니다. 이 메커니즘은 문자 메시지나 메일의 도착 알림음에 휴대전화를 집어 들려고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중요한 내용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대부분 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읽었을 때보다 알림음을 들었을 때 도파민이 더 많이 분비된다. 어쩌면 중요한 내용일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갈망은 무슨 일이 생겼나 ‘확인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집어 들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자주 이렇게 행동한다. 10분에 한 번씩. 깨어 있는 내내.
12.
많은 기업들이 뇌의 보상 시스템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행동과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을 고용해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기업들은 이미 우리 뇌에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기술 분야에서 저명한 인사들은 현대의 기술이 너무나 유혹적이어서 사용을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30대 미국인인 저스틴 로젠스타인(미국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이자 기업가로, Asana 창업자이며 ‘좋아요’ 버튼의 개발자)은 페이스북 사용을 자제하고 스냅챗은 삭제하기로 했다.
그는 이 앱들이 헤로인과 맞먹을 정도로 중독성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휴대전화 사용 습관을 바꾸기 위해 부모가 자녀의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할 때 설치하는 기능을 자신의 휴대전화에도 설치했다.
로젠스타인은 바로 페이스북의 ‘좋아요’ 기능을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더욱 흥미롭다. ‘엄지 척’의 아버지가 자신의 창조물이 지나치게 유혹적이라고 생각하는 데다가 후회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발언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선의를 가지고 개발했지만 나중에 자신의 창조물이 생각지도 못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일반적이다”라고 말했다.
13.
직장에서 서류 작성을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의 문자 수신음이 울리면 확인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정말로 중요한 내용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으니 그 김에 혹시나 새로운 ‘좋아요’가 몇 개 더 달리지는 않았을까 싶어서 페이스북을 훑는다. 그러다가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 강도 사건이 증가했다는 기사를 누군가가 공유한 것을 발견한다. 기사를 클릭하여 두어 줄 읽었을 때 스니커즈를 세일한다는 광고 링크를 보게 된다. 그러나 광고를 흘긋 보기 무섭게 절친 중 한 명이 인스타그램에 새 피드를 올렸다는 푸시 알림이 뜬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당신이 작성해야 하는 문서는 한참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당신의 뇌는 지난 1만여 년 동안 진화한 그대로 행동했다. 불확실한 결과, 즉 문자 메시지에 도파민을 분비하여 보상을 제공했고 그 결과 휴대전화를 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힌 것이다. 뇌는 새로운 정보, 특히 감정적으로 흥분되거나 위험과 관련 있는 내용을 추구한다. 이 경우에는 강도 사건 기사 같은 것이 그렇다. 그리고 푸시 알림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당신의 이야기를 적은 피드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즉 ‘좋아요’를 눌렀는지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일련의 메커니즘은 모두 뇌의 생존 전략으로, 당신에게 디지털 사탕을 하나씩 계속해서 집어던지는 것과 같다. 뇌는 이런 과정이 서류 작성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뇌는 서류 작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생존을 돕기 위해 진화했기 때문이다.
14.
우리는 한 번에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자신은 멀티태스킹을 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여러 가지 과제 사이를 뛰어다니고만 있는 것이다. 이메일을 쓰면서 강의를 들을 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두 가지의 일 사이에서 빠르게 왔다 갔다 할 뿐이다. 10여 초 만에 대상을 바꿀 수는 있지만 문제는 뇌가 여전히 조금 전까지 하고 있던 일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이메일로 초점을 옮겨도 뇌는 여전히 대역폭의 일부를 강의에 남겨두고 있다. 이메일에서 강의로 초점을 옮길 때에도 마찬가지다.
뇌는 하나의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넘어갈 때 전환기가 있는데, 넘어간 다음 작업으로 주의력이 바로 따라오지 못하고 조금 전까지 하던 일에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 이를 주의 잔류물(attention residue)✽이라고 한다. 이메일을 단 몇 초 동안만 보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메일을 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다. 이 전환기가 얼마나 긴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으나, 한 연구에 따르면 초점을 바꾼 이후 뇌가 다시 임무에 100% 집중할 때까지 수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15.
멀티태스킹을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전두엽이 더 많이 활성화되었다. 전두엽의 주요 임무는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전두엽이 더욱 고전했다는 사실은, 한 손만으로도 의자를 들 수 있는 힘이 센 사람과 그 정도로는 힘이 세지 않아 두 손을 다 사용해야 하는 사람을 비교하면 될 것 같다. 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집중력을 유지하려면 전두엽이 더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써야만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전두엽이 갖은 노력을 기울여도 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들의 최종 결과는 여전히 더 나빴다!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은 멀티태스킹을 많이 하는 사람이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정리하여 걸러내는 작업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결론 내렸다. “주의 산만이 계속되면 뇌가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16.
대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기억력과 집중력 테스트를 했는데, 실험실 바깥에 휴대전화를 둔 학생들이 무음으로 바꿔서 주머니에 넣은 학생들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 피실험자들은 휴대전화가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결과는 명백했다. 피실험자들은 그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의가 분산되었다. 여러 실험에서 동일한 현상이 관찰되었다. 그중 한 연구는 800명에게 컴퓨터를 통해 집중력이 필요한 활동을 하게 하고 그 결과를 살펴봤는데, 다른 방에 휴대전화를 두고 온 사람들이 무음으로 바꿔서 주머니에 넣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연구 보고서의 제목(두뇌 유출: 자기 스마트폰의 존재를 단순히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유효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Brain Drain: The mere presence of one’s own smartphone reduces available congnitive capacity))만 봐도 그 결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뇌는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어두고 있더라도 뇌는 무의식적으로 휴대전화와 같은 디지털 기기의 매력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기 위해 정신적 대역폭을 사용해야 한다. 그 결과, 집중력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도파민은 무엇이 중요하고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를 뇌에 알려주는데, 휴대전화가 하루에도 수백 번 도파민을 분비하게 하니 휴대전화에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뭔가를 무시하는 것은 뇌가 의식적으로 힘을 써야 하는 적극적인 행동이다. 어쩌면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친구와 커피를 마시는데 휴대전화를 앞에 두었다고 하자. 어쩌면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뒤집어놨을 수도 있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있는 동안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싶은 충동과 싸우며 ‘전화 안 볼 거야’라고 계속 생각해야 한다. 매일같이 뭔가가 우리 뇌에 수백 번의 자잘한 도파민 주사를 놓고, 뇌는 이를 무시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는다. 사실 이는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닌데, 왜냐하면 뇌는 더 많은 도파민을 주는 게 무엇인지 찾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17.
미국의 연구자가 몇몇 학생에게 테드(TED) 강연을 듣는 동안 일부에게는 종이와 펜으로 내용을 정리하게 하고, 나머지는 컴퓨터로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종이에 적은 사람들이 강연 내용을 더 잘 이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인 내용을 더 많이 기억한 것은 아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더 잘 이해했다. 연구 결과는 〈펜은 키보드보다 강하다: 노트북보다 손으로 필기하는 것의 이점(The pen is mightier than the keyboard: advantages of longhand over laptop note taking)〉이라는 명확한 제목에 잘 요약되어 있다.
정확한 이유를 대기는 어렵지만, 연구자는 키보드로 입력한 사람들은 들리는 단어를 그냥 받아 적는 데 그쳤기 때문일 수 있다고 추론했다. 그런데 펜으로 필기할 경우에는 대부분 키보드처럼 빠르게 적을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내용을 적을지 우선순위를 따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손으로 적을 때는 정보를 처리해야만 하고 따라서 그 정보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휴대전화를 그저 옆에 두기만 했는데도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에 방해가 되었다는 점이다. 강연을 듣는 동안,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던 피실험자는 처음 10~15분 동안은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들만큼 내용을 이해했다. 그러나 곧 강연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떨어졌다. 15분 동안은 집중해서 듣다가 그 뒤부터 집중력이 사그라지는 이유는 휴대전화가 주의를 흩트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8.
수면의 무엇이 그렇게 중요해서 자연은 우리에게 잠자고 싶은 욕구를 주었을까? 우리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말이다.
수면은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뇌 입장에서 보면, 자는 동안에도 깨어 있을 때만큼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중 하나가 낮에 쌓인 조각난 단백질 형태의 노폐물을 청소하는 일이다. 하루 동안 꽤 많은 양이 쌓이기 때문에 뇌는 1년 동안 자기 무게에 맞먹는 ‘쓰레기’를 청소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밤마다 청소하는 습관은 뇌가 제대로 기능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수면 부족이 장기화할수록 질병에 걸릴 가능성도 계속해서 커지는데, 그중에는 뇌졸중과 치매도 있다. 일반적으로 ‘청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라고 보고 있다.
19.
10대와 성인을 대상으로 한 30여 개의 서로 다른 연구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운동은 우리 시대에 너무도 부족한 집중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신체 활동은 계획 수립 능력, 집중 대상을 전환하는 능력 등 일의 실행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 10대의 집중력은 이따금 산책을 하거나 달리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반면, 일의 실행 기능 향상에는 몇 주 또는 몇 달에 걸친 규칙적인 신체 활동이 필요했다.
20.
몸의 움직임을 통해 정신적인 사고 과정의 처리 속도가 가장 많이 향상되었다. 그러니 신체 활동이 활발해지면 더 빠르게 사고할 수 있다.
6개월 동안 최소 52시간을 움직이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는 일주일에 2시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이를테면 이 시간을 일주일에 45분씩 세 번으로 나눠 사용할 수 있다. 사실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해서 뇌에 어떤 추가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몸은 좋아질 것이다. 뇌의 관점에서 보면, 일주일에 2시간 몸을 움직이고 나면 어느 시점에선가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니 긍정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마라톤을 완주할 필요는 없다!
뇌의 관점에서 볼 때, 심박수를 높이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낫다. 그렇지만 쉬엄쉬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심박수를 높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21.
전례 없이 복잡한 사회는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지만(플린 효과), 우리의 정신 능력 중 너무 많은 부분을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넘겨주어 더 멍청하게 만들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관찰되는 IQ 하락세의 원인일 수도 있다.
많은 학자들이 자동화와 인공 지능 때문에 앞으로 많은 직업이 사라질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살아남는 직업은 아마 집중력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얄궂게도 디지털 세계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이자 약화되고 있는 능력이 바로 집중력이다.
22.
저술가인 니컬러스 카(Nicholas Carr)는 활판 인쇄술이 어떻게 여러 층위에 고도의 집중력을 보급했는지 설명한 바 있다. 책을 펼친 사람은 누구든지 순식간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보면서 저자가 쓴 내용에 집중할 수 있지만, 인터넷은 책과 정반대라고 봤다. 인터넷은 깊은 생각을 퍼뜨리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과 더 빠른 도파민 주사만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겉만 훑고 지나가게 한다는 것이다.
23.
디지털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 수칙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
휴대전화 사용 시간을 체크해보자. 휴대전화를 얼마나 자주 집어 드는지, 얼마나 오래 사용하는지 알려주는 앱을 사용해보자. 이렇게 하면 휴대전화가 당신의 시간을 얼마나 많이 빼앗고 있는지 명백하게 볼 수 있다. 인식은 변화의 첫걸음이다.
자명종 시계와 손목시계를 구입하자. 필요 없는 기능까지 휴대전화에 맡기지 말자.
하루에 1~2시간 정도 휴대전화를 끄자. 주변 사람들에게 매일 1~2시간씩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하자. 그러면 당신이 대답을 안 한다고 짜증이나 화를 내는 메시지를 받지 않을 것이다.
모든 푸시 알림을 꺼라.
휴대전화를 흑백 톤으로 설정하자. 색채가 없는 디스플레이는 도파민 분비량을 줄이며, 도파민 분비가 줄어들면 스크롤을 하려는 마음에도 영향을 미친다.
운전할 때에는 무음으로 바꾸자. 이렇게 하면 중요한 순간에 주의가 분산될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휴대전화 메시지나 통화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집중력을 앗아갈 수 있다. 메시지나 통화에 대답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what
뇌과학
where
밀리의 서재
when
24.8.11 ~ 8.16